▲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조위원장이 사내 방송실에 들어가 출입문을 잠근 채 방송으로 노조 간담회 참석을 독려한 행위는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해 처벌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정당한 노조활동에 수반되는 부수적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취지다.

2016년 ‘성과연봉제 폐지’ 쟁의행위
간담회 참석 독려차 ‘방송실 사용’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최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주거침입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정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윤 부위원장은 철도시설공단노조 위원장이었던 2016년 9월22일 오전 11시17분께 철도시설공단 사내 방송실에 노조간부 7명과 함께 들어가 노조 간담회 참석을 독려하는 방송을 하고 관리 직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출입문을 잠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노조는 공단이 도입한 성과연봉제에 반대해 단체교섭을 하다가 결렬되자 쟁의행위를 의결했다. 이후 노조는 천막농성장에서 ‘중식간담회’ 계획을 세웠고 조합원들에게 간담회 참석을 독려하던 중 경영노무처 사무실 내 방송실에 들어갔다.

검찰은 윤 부위원장이 방송실에 침입하면서 위력으로 방송실 관리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업무방해와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주거침입 등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에서는 방송실 점거를 ‘형법상 정당행위’로 볼 것인지를 두고 다퉈졌다.

1심은 윤 부위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점거의 범위가 사무실 시설 중 일부분이고 쟁의행위가 시기와 절차에서 위법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정당행위가 아니라며 1심을 깨고 윤 부위원장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부위원장이 사전에 방송실 사용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 △노조간부들과 방송실에 들어가 진입 저지를 예상한 것으로 보이는 점 △방송실 문을 잠그고 직원 출입을 막은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 “정당행위, 위법성 조각”
당사자 “적법한 노조활동”

대법원은 항소심을 다시 뒤집었다. ‘방송실 점거’는 형법상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공소사실 기재 행위는 외견상 각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그 주체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절차적 요건을 갖췄다”며 “관행적으로 실시되던 방식에 편승해 이뤄진 행위로서 수단과 방법의 적정성을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성과연봉제 폐지’ 간담회를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적법한 쟁의행위에 수반되는 ‘부수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방송실은 출입이 원칙적으로 금지·제한된 구역이 아니다”며 “방송실 출입 과정에 폭력 등 파괴적인 행위가 수반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별다른 제한 없이 방송실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노사관행이 계속됐다고 봤다.

‘방송실 점거’가 공단의 시설을 침해한 수준도 적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송실 사용과 관련한 일련의 행위로 인한 공단의 시설관리권 등 침해의 정도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피고인의 공소사실 기재 행위로 인해 공단의 시설관리권 또는 그 본질적인 부분이 침해됐다거나 법익균형성의 측면에서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윤 부위원장은 정당한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그는 6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항소심 판결로 보면 사실상 노조활동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는데, 이번 판결은 굉장히 의미 있다”며 “성과연봉제을 막기 위해 쟁의행위를 시작했는데 공단측이 무력화한 탓에 방송실을 통해 알렸던 것이고 평상시 노조활동을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